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난 원래 98학번이였다. 수능 응시생이
사상최대였던 전설적인 집단이다.
중,고등학교 때 한 반에 56~7명 정도
까지 있었던걸로 기억난다.

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
했다. 하지만 내가 입학때부터 몸이
좋지 않으시다던 어머니께서 그해
돌아가셨다. 한동안 미친 사람처럼
살았지만 아버지와 형덕분에 다시
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.

나의 어머니 이야기는 별도로 다시
할 것이다.

그리고 2학년때, 1999년도에 휴학을 하고
군에 입대했다. 철원 3사단, 백골부대의
얘기도 나중에 하기로...

2001년 7월 제대를 하고 다음해 복학을
위해 집 앞 약국에서 6~7개월 정도
아르바이트를 하고 2002년 복학을 했다.

복학을 위해 학교 근처에 친구와 함께
자취방도 구하고, 등교를 위한 자전거도 
구하고 살림살이도 어느정도 갖추었는데 
개강 2~3일전에 아버지에게 한 통의 
전화가 왔다.

'아들, 재수 한 번 해볼 생각은 없어?'

사실 96년도 수능에서 형이 수능 점수가
평소 모의고사 보다 많이 적게 나왔을때
아버지는 형에게 재수를 귄유하셨다.
하지만 그 시절 재수는 평범한 선택이
아니었고 형은 그냥 진학을 선택했다.

아버지께서는 재수 후, 아들이 더 좋은
대학에 가기를 원하셨을까?

나도 재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때였다.
재수 후, 더 좋은 대학에 가면 더 좋은
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.

하지만 고민이 되었던 것은 재수하는 동안
들어가는 비용과 진학 및 취업이 늦어지는
것이였다.

하지만 그런 걱정은 아버지의 전화 한통으로
저만치 날아가버렸다.

금전적인 부분은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과
아버지의 도움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였다.

다음으로 늦어지는 졸업과 취업이였다.
하지만 늦어지는 만큼 더 좋은 직업을 가지면
된다라고 생각을 마무리했다.

내가 생각을 하고있던 부분이였지만 현실적인
조건으로 인해 주저하고 있던 재수에 대한
결심이 아버지의 전화 한 통으로 깨끗이
정리되었다.

그날 저녁, 아버지께 바로 재수를 하겠다고
말씀 드렸다.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아버지께서
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오셨다.

그 길로 나의 재수 생활이 시작 되었다.

고민한 시간에 비해 결심을 하고 실행하는
것은 순식간이였다. 

이러한 점이 나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.
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은 거침없이...
내 삶의 모토 중 하나이기도 하다.

그리하여 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되고 있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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